2015. 9. 28. 추석 다음날, 화엄사 탐방
▲ 동오층석탑
▲▼ 서오층석탑
▲ 싸리버섯전골(1인분 12,000원)
화엄사 문화유산
544년(신라 진흥왕 5년, 백제 성황 22년)에 연기가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화엄경》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643년(선덕여왕12년)에 자장법사가 증축하였고, 석존사리탑(釋尊舍利塔) · 7층탑 · 석등롱(石燈籠) 등을 건조하였다.
(鳳城志)에 따르면, 문무왕 때 의상국사가 왕명을 받아 석판에 《화엄경 80권》을 새겨 절에 보관하였다. 875년 신라 헌강왕 1년)에 도선이 다시 증축했다.
고려시대에도 중수가 잇따랐다. 943년(고려 태조 26년)에 도선의 유지에 따라 오백선찰을 먼저 건립하고 뒤에 삼천팔백사를 세우는 일을 시작하면서 기존 사찰 중 화엄사가 제일 먼저 중수되었다. 이후에는 광조대, 문종대, 인종대, 충숙왕대에 걸쳐 총 네 차례에 걸친 중수가 더 있었다.
화엄사에는 벽(壁)을 청석(靑石)으로 두른 전각이 있었고 이 청석에 화엄경이 조각되어 장육전(丈六殿, 부처의 키가 6척이었다는 설에서 유래한 이름)에 보관하였으나 임진왜란 중인 선조 26년(1593년)에 불타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지금도 간혹 청석 조각을 볼 수 있는데 당나라 초기의 글씨체를 보인다고 한다. 벽암선사가 인조 8년(1630년)부터 14년(1644년)에 걸쳐 대웅전을 비롯한 일부 건물을 재건하였고, 재건 후에 선종대가람으로 승격되었다. 그외 대부분의 건물은 17세기에 건축된 것이다.
숙종 27년(1701년)에 화엄사 중건을 완성하고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가람(大伽藍)으로 하였다.
중요 건물은 대웅전 이외에 각황전(覺皇殿) · 보제루(普濟樓) · 명부전(冥府殿) · 원통전(圓通殿) · 영산전(靈山殿) · 응향각(凝香閣) · 적묵당(寂默堂) · 금강문(金剛門) · 천왕문(天王門) 등이 있다.
절 앞쪽에 1칸 1호의 일주문이 있어 ‘지리산 화엄사(智異山 華嚴寺)’라는 편액이, 다음에 금강역사, 문수보살, 보현보살의 상을 안치한 금강문이, 조금 서쪽에는 사천왕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이 있다.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67호),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은 1962년에, 화엄사영산회괴불탱은 1997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華嚴寺覺皇殿은 국보 제67호이다. 석가모니 · 아미타불 · 약사불의 삼존불과 법화경의 사보살인 문수보살, 보현보살, 양왕보살, 관음보살의 상을 안치한 화엄사의 중심 법당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장육전의 자리에 숙종 25년(1699년)부터 28년(1702년)까지 새로 지었다. 법당을 지은 후 숙종이 각황전이라는 이름을 사액하였다. 각황전의 사액에는 거지가 숙종의 공주로 환생하여 시주하였다는 민간의 설화가 전한다. 하지만 숙종에겐 공주가 없었기 때문에 실재의 역사는 아니다.
조선시대 중기 및 후기를 대표할 수 있는 사찰 건물로, 규모에 있어서도 근정전 다음 가는 큰 건물이다. 정면 7칸, 측면 5칸의 조선시대 양식의 웅대한 중층불전으로, 내부에는 청판을 깔고 중앙의 5칸 3면에 기둥을 세웠다.
華嚴寺覺皇殿前石燈은 국보 제12호이다. 각황전 바로 앞에 있으며 높이 6.4미터, 직경 2.8미터의 큰 석등이다. 기석(基石)은 8각, 간석(竿石)은 병 모양으로 중간에 띠를 둘렀고, 각 면에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현존하는 석등 가운데 가장 크며 신라 시대 불교 전성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은 국보 제35호이다. 높이 7.17미터. 하단의 각면에 3구씩 도합 12구의 천인상을 양각으로 표현했고, 상성기단의 네 구석에는 앉아 있는 암수사자를 기둥처럼 세우고 그 중앙에 서 있는 스님상을 두어 위의 무게를 받게 하였다. 탑신은 기단에 비해 비율이 작은 느낌이 드나 층급(層級, 받침)은 5단이고 조층에는 각 면마다 문비(門扉)의 문양이 새겨 있으며 그 양 옆에서 인왕상(仁王像)이 배치되어 섬세한 효과를 낸다. 착상이 기발하고 특이한 형식을 갖춘 점에서 불국사 다보탑과 쌍벽을 이룬다.
화엄사영산회괘불탱(華嚴寺靈山會掛佛幀)은 국보 제301호이다. 가로 7.76cm, 세로 11.95m에 이르는 거대한 화면에 석가모니불과 문수 · 보현 보살을 중심으로 사천왕과 십대제자, 2구의 분신불, 십장제불 등이 적절하게 배치된 군집도 형식이다.사천왕 가운데 2구는 상단에 나머지 2구는 하단에 그려 사방을 수호하는 것을 묘사하였다.
동오층석탑은 보물 제132호이다. 높이 6.4미터, 대석(臺石) 1변의 길이 2.8미터이며, 대웅전 아래 광장에 동·서 두 탑이 서로 마주 섰는데, 동 오층석탑은 서 오층석탑에 비하면 기교가 없다.
서오층석탑은 보물 제133호이다. 높이 6미터이며, 2층 기단 위에 세워져 있는데 하단 4면에 각 3구의 십이지상을, 상단 각 면에는 사천왕·인왕 등의 상을 2구씩 각각 새겼다. 탑신은 비교적 좁고, 처마 끝이 나와 있는 것 등 웅건한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화엄사 대웅전은 보물 제299호이다. 건평 35평, 높이 35자의 목조 건물이다. 원래의 건물은 1597년(선조 30 : 정유재란 때)에 불타 버렸다. 현재의 건물은 1636년(인조 14)에 벽암선사가 중건한 것이다. 총 15칸· 5칸· 3칸의 단층으로 된 매우 드문 구조 양식의 건축물이다. 또 내부의 불화 및 돌층계 등도 특수하다.
원통전 앞 사자탑은 보물 제300호이다. 높이 10.3자, 폭 6.3자이고, 재료는 화강암이다. 평방 4각형으로 아래에는 사천왕(四天王)을 조각하였으며, 가운데에는 4마리의 사자가 감로수(甘露水)를 받들고 있는 형상으로 되었다.
화엄석경은 보물 제1040호이다. 엷은 청색 돌에 화엄경을 새긴 것이다. 신라 문무왕 17년 의상대사가 화엄사에 경각을 세우고 비치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장육전이 소실되면서 함께 부서졌다. 지금은 약 9천여 개의 파편이 발견되어 보관 중이다. 비록 파편이기는 하나 신라 하대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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