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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나무/다도해 야생화

구실잣밤나무에 대한 생각

by 물골나그네 2018. 1. 4.

2018.  1.  2. 소리도 당숲

점심시간 짬을 내어 우리동네 당숲에 있는 구실잣밤나무 군락지에 가봤다. 우리동네 구실잣밤 열매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구실잣밤이겠거니 하고 땅바닥에서 열매를 주워서 깍정이를 벗겨봤더니 길쭉한 것도 보이고 동글한 것도 보이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형태의 것도 보인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그동안 내가 보았던 그려왔던 열매 이미지와 다르다. 왜 이럴까??

 

이내 그 문제는 풀렸다. 그 이유는 구실잣밤나무 성향을 가진 나무와 모밀잣밤나무 성향을 가진 나무가 조그만 계곡을 사이에 두고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워낙 거목이다 보니 윗쪽에는 두나무 가지들이 엉켜있었다.

열매가 길쭉한 것은 구실잣밤나무 성향을 가진 나무의 것이고 동글한 것은 모밀잣밤나무 성향을 가진 나무의 열매인 것이다.

중간형태의 것은 두 나무의 사이의 꽃가루 간섭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꽃피는 시기가 비슷하니 벌들이 두 나무를 왔다갔다 하면서 자연스레 섞어 놓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구실잣밤 암꽃에 모밀잣밤 수꽃가루를 묻히고, 모밀잣밤 암꽃에 구실잣밤 수꽃가루를 묻혀 놓았다.

그 결과로 중간형태의 열매가 생겼다고 추정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인접해 있는 두 나무도 제 성질을 100%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열매도 전형적인 구실잣밤, 모밀잣밤이 아니다. 잎도 마찬가지다. 모밀잣밤 성향을 많이 가진 나무도 잎에 약간의 물결성 톱니가 보인다.

구실잣밤 성향을 가진 나무도 잎 가장자리에 물결성 톱니가 있는데 표시나게 있는 것도 아니다. 약간 떨어져서 보면 민자로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 봐야 보인다. 그것도 어린 가지에 나 있는 잎들은 물결성 톱니가 없는 것도 있다.

두 나무 모두 순도 100%짜리 모밀잣밤나무도, 구실잣밤나무도 아니다. 순종이 아닌 것이다.

이곳 소리도 당숲 잣밤나무는 수백년 아니 수천년에 걸쳐서 두 종류 나무의 유전자가 자연스레 섞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모밀잣밤나무 순림으로 천연기념물로 관리되고 있는 통영 욕지도도 마찬가지다. 주변 섬이나 육지에서 간섭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면 제대로 된 구실잣밤, 모밀잣밤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한종류 잣밤나무만 자생하는 남해안 도서지방으로 벌들의 간섭을 안 받는 외딴 섬에는 순도 100%에 가까운 잣밤나무가 있을 것이다.

여수에서는 거문도가 유력하다. 거문도는 여수에서 115km 떨어진 외딴 섬이기 때문이다. 거문도 식생 현황에도 구실잣밤나무는 있어도 모밀잣밤나무는 없다고 조사 보고되고 있으니 말이다. 거문도 잿밤이 보고 싶어진다.  

 

 ▲  두 종류 잣밤나무 밑에서 주웠는데 열매만 떨어져 있는것도 있고 깍정이가 벌어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  두 종류 잣밤나무가 있는 곳에서 주워온 열매를 구분해 봤다.

      왼쪽 윗쪽 길쭉한 열매는 '구실잣밤나무'로 보이고, 오른쪽 윗쪽 동글한 열매는 '모밀잣밤나무'로 보이고

      아래쪽 열매는 두 나무 꽃가루가 섞어졌다고 추정된다.

▲  잎 가장자리에 물결성 톱니가 보인다.

   ▲▼ 올 9월이나 10월에나 성숙할 열매를 가지마다 조랑조랑 달고 있다.   

 

 

 

 

 ▲ 왼쪽은 구실잣밤나무 성향을 가진 나무고 오른쪽은 모밀잣밤나무 성향을 가진 나무다. 모밀잣밤 잎 색깔이 더 진하다.

  ▲ 2017.  5. 18. 잣밤나무 꽃이 핀 모습이다. 2종류 나무 모두 꽃피는 시기가 거의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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